일요일기

[0103S]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면 미용실 문을 두드려 보라

노작가 2021. 1. 3. 15:24
 머리를 자르겠어!

대나무 칫솔

어느 날 밤에 양치를 하는데 그 모양새가 참 웃기다고 생각했다. 헐렁하게 묶은 머리, 그 탓에 자꾸만 흘러내려오는 머리카락, 그 머리카락에 묻는 치약과 물. 이 무슨 우스운 꼴이람. 나는 속으로 '허'하고 한숨을 뱉었다. 결국 나는 양치를 하는 동안 거슬리지 못해 짜증까지 유발한 내 머리카락을 자르기로 했다.

 

designby83.co.kr

 

나는 망설임 없이 미용실로 들어갔다. 옷을 보관하고 목욕탕 열쇠 같은 팔찌를 받았다. 목욕탕에 온 것 같은 정겨운 기분이 들었다. 미용실에는 저녁 시간인데도 사람이 꽤 있었다. 바쁘게 돌아가는 미용실 사이에서 나는 손이 부르튼 미용사로부터 선택받았다. 손이 부르튼 미용사는 남자 디자이너였는데, 아마도 예약할 때 숏컷을 잘 하는 디자이너로 부탁한다고 말해서 그런 것 같았다. 자리로 가는 동안 디자이너의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가 내 눈길을 끌었다. 나도 몇 분 뒤면 곧 저렇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.

 

의자에 앉아 머리에 대한 상의를 했다. 먼저 내가 골라 온 사진을 보여주었고 그 머리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었다. 투블럭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, 내가 선택한 머리 스타일을 하려면 약간의 투블럭은 필요하다고 말했다. 디자이너는 소위 이주영 머리스타일 그리고 숏컷과 단발 그 경계 사이에 있는 머리들을 보여주며 이러한 스타일도 있다고 알려주었다. 그러나 나는 이미 내가 가져 온 남자 머리 스타일에 꽂힌 뒤라 사실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. 단지 내 고민은 하나. 투블럭을 할 것이냐, 아니냐였다. 시간이 더 지체되면 저녁을 못 먹을 것만 같아 결국 하고 싶은 걸 하기로 했다. 투블럭. 그렇다. 내 옆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. 나는 이제 태어나면서 처음 해보는 머리스타일에 도전하는 것이다.

 

서걱서걱. 눈이 질끈 감겼다. 사정없이 잘려나가는 나의 머리카락들이 '주인님! 왜 저를 자르시나요!'하고 날 원망하는 것 같았다. 그러나 '너희들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한 탈색모가 아니더냐. 떠날 때가 되었다.' 디자이너도 상한 머리니 아쉬워하지 말라며 쿨하게 그것들-내 머리카락이었던 것들-을 바닥에 던졌다. 이후 내 머리카락들은 하나 둘 디자이너의 손에 의해 잘려나가기 시작했다.

 

위이잉. 디자이너가 바리깡을 들었다. 바리깡으로 머리를 미는 것은 처음이었고, 처음 경험해본 바리깡은 신세계였다. 아주 시원했다. 마사지를 받는 것도 같았다. 이 시원한 걸 이때까지 머리 짧은 사람들만이 경험했단 말이야? 조금 억울했다. 뒷머리는 이제 바리깡으로 내 두피가 드러났을 테다. 손으로 만져보고 싶었지만 미용실 가운에 내 손이 묶인 상태라 손을 들 수가 없었다.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. 머리를 감으러 갈 때, 그때가 기회였다. 나는 슬쩍 손을 뒷머리에 갖다댔다. 까칠한 촉감. 지금까지 뒷머리를 만질 때의 그 부드러움은 어디가고 까슬까슬한, 마치 성게 표면과도 같은 그 느낌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.

 

머리 스타일의 변화로 얻은 삶의 엔돌핀

 

12월의 하늘

 

펌까지 끝난 후 새로워진 나의 모습을 거울로 맞이했을 때 발끝부터 머리 끝까지 엔돌핀이 돌았다.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엔돌핀을 선사한다. 그러나 이것은 정말이지 신선한 충격과도 같은 엔돌핀이었다.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는데,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다른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 아빠였다. 그렇다. 머리를 자르고 아빠와 더 많이 닮아진 것이다. 유전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걸 거울을 볼 때마다 몸소 경험하고 있다.

 

겨울이라 짧아진 머리에 두피가 시렸다. 하지만 기분은 어느 때보다 상쾌했다. 머리는 아주 만족스럽게 잘렸고 나는 내 모습에 흡족했다. 머리가 너무 마음에 들어 셀카를 찍은 것도 처음이었다. 친구들에게도 자랑했다. 머리 스타일의 변화에 이렇게나 행복할 수 있다니. 의외로 행복은 사소한 것에서 온다는 말이 정확했다.

 

머리를 자른 지 2주가 지났다. 잠을 자고 일어나서 머리를 묶는 일도, 잠을 자기 전에 머리를 푸는 일도, 식사하기 전에 머리를 묶는 것도, 양치하기 전에 머리를 묶는 것도 없는 아주 편안한 생활이 되었다. 내 어깨를 타고 내려오는 머리카락들이 없는 것만으로 나의 활동과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.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역시 미용실을 자주 가줘야 한다는 것이다. 머리카락이 길어지는 것이 하루가 지날 때마다 보이니 마음이 속상하기도 했다. 마음에 쏙 들었던 머리는 겨우 이틀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.

 

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머리스타일을 바꿀 의향이 없다.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. 겨울이라 뒷목이 시렵긴 하지만 그것마저도 즐거움으로 느껴질만큼 나는 충분히 이 숏컷을 즐기고 있다. 머리 스타일 변화만으로 이렇게나 삶이 즐거워지다니. 삶이 지루하고 나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길 원한다면 미용실 문을 두드려 보라. 당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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